세상이즐겁다

지셴린의 젊은 지혜

yigdal(米糠) 2016. 8. 17. 20:47

다시 지셴린의 젊은 지혜를 읽다.
 
 

지셴린(중국,季羨林 1911-2009) 100년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면서 사색과 명상이 의 글을 많이 남긴 분이다.
지셴린은 중국의 언어학자, 문학자, 동방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산둥(山東)성 린칭(臨淸)시에서 태어났으며 1930-1934년 칭화 대학(淸華大學) 서양문학과에서 수학하고 1935년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 건너가 유학했다.
1941년 동 대학 발트슈미트(E.Waldschmidt)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남아 교편을 잡다가 1946년 중국에 돌아가 천인커(陳寅恪)의 소개로 베이징 대학(北京大學) 동방어문학부 주임교수로 부임, 동방학 분야의 학과 창설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 위원, 베이징대학교 부총장, 동남아시아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인도어문학, 불교사, 비교문화, 문예학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과 많은 저술을 남겼다. 24권의 «지셴린문집»등이 있다. 만년에 지식인으로서 겪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책인 '우봉잡억'을 저술하였다.
 
98세 시절, 그는 생()과 사()에 있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정할 것은 없다고 말한다. 불안정한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고 순간의 고통과 기쁨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만이라는 느낌에서 오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일찍이 아내를 여의고 자녀들과도 떨어져 살았다. 하지만 학문하는 기쁨과 깊은 명상을 통해서 인생을 살찌웠다.
그의 인생관을 익히 터득한 후학들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아 늙을 틈이 없었던지 팔순이 지나고 구순이 지나도 그에게는 항상 건강이 따라 주었던 것.
98세 노인의 글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젊은 사상을 지녔기에 여기 몇몇 글을 초록해 둔다.
 
 
<시간은 만들기 나름>
 
시간은 생명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시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의 문제는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를 의미할 수도 있다.
비행기나 기차, 자동차,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때나 걸어서 이동할 때는 쉬지 않고 머리를 굴린다. 그 시간이 소중한 자투리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천재가 두렵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스스로 천재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고 타인을 무시한다. 대부분 얼굴만 보아도 범접하기 힘든 오만함이 흐르고 자신이 남들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다고 자부하며 범상한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사라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얼간이가 되고 만다. 그런데 요즘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이 사회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쓴다>
 
절필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있을까
세월이 갈수록 절필 시기도 늦어지고 있다.
지식인에게 펜은 총보다 강하다. 아직도 펜을 놀릴 힘이 있는데 어찌 이런 기회를 포기하겠는가.
 
 
<늙어간다는 것>
 
늙음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또 어떤 때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예순 살도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 내게 처음으로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처음 듣는 호칭에 불쑥 반감이 들고 영 어색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몇 번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러워지고, 가끔은 친근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내 모습에 새삼 깜짝 놀랐다. 내가 정말로 늙어버렸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닌가. 이 커다란 변화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누구나 스스로 늙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간에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늙었음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차츰차츰’이다. 늙음도 슬픔과 기쁨처럼 차츰차츰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다. 자신이 늙었음을 차츰차츰 인식해간다면 인생이 쓰고도 써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아님을 깨닫는 동시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서둘러 끝마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늙음을 인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인간사에 통달한 모든 노인들, 가끔은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줄곧 죽음에만 연연하지 말지어다. 모두가 도연명의 시 <신석>의 마지막 네 구절을 가슴에 새길 수만 있다면 더 무얼 바라겠는가.
 
縱浪大化中 커다란 격랑 속에서도
不喜亦不懼 기뻐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게.
應盡便須盡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無復獨多慮 더는 걱정하지 마시게.
 
반면에, 자신의 나이 때문에 자신감이 줄어들어, 혈기왕성할 때는 충분히 해냈던 일들을 이제는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고 미리부터 포기하는 좋지 않은 점도 있을 수 있다.
 
 
<노년의 건강 유지 비결>
 
잘 먹고, 잘 누고, 잘 자고, 대범하게 생각하라.
네 가지 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네 번째 항목이다.
세상사 십중팔구가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대범하게 생각하는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이 들어 말이 많으면>
 
노인에게 충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혈기가 쇠하여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으니 각별히 말을 조심하시길.
 
 
<대접 받고 싶은 욕심>
 
남들에게 존경받느냐의 여부는 존경받을 만한 점이 있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존경 받을 만한 구석도 없으면서 나이가 많다는 것만 내세워 대접해주길 요구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은 없다.
 
 
<나이를 받아들여야 할 때>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늙음을 인정하는 것은 이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늙었음을 인정하라는 말인가, 인정하지 말라는 말인가.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전략상으로는 늙었음을 인정하지 않되, 전술상으로는 늙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운용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산책교수>
 
산책교수란 정년퇴직한 교수가 날마다 교정 곳곳을 산책하다가 전교의 유명인사가 된 퇴임교수를 말한다.
건강을 위해 하는 산책이라면 탓할 이유가 없지만, 하루 종일 이 같은 단련만 한다면 너무 단조로운 일이 아닌가.
학문의 바다에는 끝이 없거늘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 자유롭게 유영한다면 심신을 모두 단련할 수 있지 않을까?
 
 
<눈이 어두워지기 전엔 미처 몰랐네.>
 
정말로 알았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정말로 알았네. 인간 사는 곳이 수려하다는 걸.
정말로 알았네. 우리 삶이 사랑스럽다는 걸.
 
 
<초연해지려면 멀었다>
 
구리가 황금이 될 수 없는 법.
몸 구석에 난 작은 물집 몇 개로 삶에 발버둥을 치면서 나의 진면목을 내 보인 나. 너무도 당혹스런 일이다. 이런 저런 해명이 무슨 소용이랴.
아흔이 훌쩍 넘은 사람. 인생에 초연해지려면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듯싶다.
 
 
 <인생의 위미와 가치>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안다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 사람이 인생이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믿고 있다.
인류의 앞날이 여전히 밝다고 생각한다.
얼마간의 우여곡절을 겪고 얼마간의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해도, 인류는 점점 발전할 것이다.
인간 사회의 발전이라는 기나긴 강물에 어떤 세대든 그들에게 지워진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인류 전체의 발전에 이바지를 해야 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치는 의식 있는 극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인생은 없다>
 
누구에게나 읽기 힘든 경전이 있다.
"인간에게 이별의 슬픔과 만남의 기쁨이 있고, 달에게는 밝고 어둡고, 둥글고 이지러짐이 있으니 이는 예로부터 온전하기 어려웠다."라고 소동파는 말했다.
세상일의 십중팔구는 여의치 않고 마음에 드는 일은 한두 가지밖에 없다.
 
 
<행운과 불행의 동행>
 
행운이 찾아와도 너무 득의양양하지 말고
불행을 겪어도 행운을 떠올리며 심하게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래 사는 길이다.
화의 곁에 복이 기대어 있고, 복 곁에 화가 엎드려 있다. 노자가 말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고 상호의존적이며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
 
 
<성공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
 
성공은 70퍼센트의 근면과 20-30퍼센트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
천부적인 소질+근면+기회= 성공
근면하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노력을 아무리 해도 재능이 없으면 성장과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성공의 비결 가운데 간혹 간과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기회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명석함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라"
옛말에 '지족상락 知足常樂'이라는 말이 있다.
'분수를 알고 지켜 항상 즐겁게 산다.'는 뜻이다.
누구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안정적이고 천하는 태평할 것이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보통 사람들이 가진 상식에 따라 선악을 판단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무엇인지 구분하면 그걸로 족하다.
선이 적다고 하여 그것을 아니 행하지 말고,
악이 적다고 하여 그것을 행하지 말라.
천리 제방도 때로는 개미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진다.
처음에는 작은 악에서 부터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점점 불어나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때 후회해도 소용없다.
 
 
<인연과 운명을 믿는 사람>
 
사소한 일이라도 크게 보면 중요하다.
인연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사람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큰 차이가 있다.
인연을 믿는 사람은 성공해도 오만하지도 않고 실패해도 실의에 잠기지 않는다.
이겨도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져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옛말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진인사'하지 않으면 하늘에서 부스러기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
또 그 뒤에는 천명을 기다려야 한다.
인간 세상은 복잡하고 원인과 결과가 얼기설기 얽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적응과 영합>
 
영합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환경에 무조건적으로 끌려가는 것을 의미하고,
적응은 객관적인 상황에 자신을 맞춘다는 뜻이다.
영합은 유쾌하지 않는 것에 끌려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원칙이나 윤리에 어긋나지만 어쩔 도리 없이 이기심이나 다른 이유로 하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영합은 자신의 양심을 버려야 함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것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과거의 많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적응은 진보하는 것에 맞추어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적응은 해야 하지만 영합은 하지 말라.
 
 
<친구와 함께 한다면>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데 이것은 본성인 듯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입법자는 정의보다도 우정에 더 마음을 썼노라"라고 말했다.
애정은 일단 우정 단계로 들어서면 다시 말해 뜻이 맞고 의기가 투합하는 단계로 들어서면 곧 사그러진다. 애정은 육체의 쾌락을 목적으로 하고, 한 번 쾌락을 맞보면 도저히 그만 돌이킬 수 없다.
반대로 우정은 원하면 원할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다만 우정은 얻은 후에 비로소 커지고 발전한다. 우정은 정신적인 것이어서 영혼까지 따라서 정화되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 독서>
 
수 천 년 동안 지혜를 보존하고 축적한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문명유적과 같은 실물이고, 다른 하나는 책이다.
 
지셴린은 성공적으로 노년기를 보낸 분이다. 
그는 사회적 관계와 활동을 최대한 유지했으며, 젊은 층과 꾸준히 접촉했다. 또한 노년기를 중년기 삶의 연장선에서 꾸려 나갔다. 가정적·사회적 책임과 의무에서 해방된 행복감을 느끼며 경제적 자립도를 높였다. 중요한 것은 노화와 죽음이 인간의 숙명임을 받아들이고, 지나간 삶에서의 성취, 실패, 행복, 좌절 등을 모두 인정하면서 생의 의미를 찾았다.
 
그는 이 시대의 참 스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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