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일에 지친 교인들
교회들이 비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없고, 학생이 없고, 청년이 없다. 아이들이 있어도 교사가 없다.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늘어가고 봉사와 섬김은 늘 하는 사람만 한다. 그래서 몇몇 사람은 교회에서 각종 중직을 도맡아 하면서 피로가 누적되어 간다. 이들의 바쁜 수준은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주일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는 날이고, 주 중에도 다양한 모임과 예배가 있으며, 집에서도 혼자 처리할 일이 많다.
교회는 누군가 일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일을 안 하고 편하게 다니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마당에 이런 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은 박수를 쳐줄 만하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말 뺀질이나 선데이 크리스천 말고, 마음은 있는데 시작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들과 목사는 알까? 어떤 봉사를 시작하면 그 하나만으로는 끝나지 않고, 진짜 열심히 있고 남다른 재능이 있으면 온갖 일에 불려 다니고 점점 일이 늘어난다. 전문용어(?)로 '지경을 넓힌다'고도 하는데, 특히 교회 일에 최적화된 주특기를 지닌 사람은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교회에 일하러 가는 건지 예배하러 가는 건지 모르는 '지경'이 된다.
그런데도 연말에 일의 가짓수를 정리하려고 하면, 이제 축복이 코앞인데 자기 복을 차 버리는 사람들에 관한 설교가 나온다. 미치고 팔짝 뛰다 못해 교회를 옮기기 전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실제로 봉사를 열심히 했더니 남편이 승진을 하고 아파트에도 당첨됐다는 간증 아닌 간증이 일을 좀 줄이려는 마음을 께름칙하게도 한다. 늘 내려놓음에 대해서 듣는 교인들이 교회 일만은 내려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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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종의 딜레마이다. 교회 일은 안 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자기 재능을 바치고 무언가 하지 않으면 교회가 운영될 수 없고, 모일 이유도 없다. 문제는 그 일이 어떤 일이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로 분주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물론 교회 일은 빛이 안 나는 허드렛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먹이고 하는 일에는 많은 손이 간다.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 지치면, 모든 일을 고르게 잘 해낼 수 없으므로 어떤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일처리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 우선순위 안에 직장도 들어가고 가정도 들어가서, 목사님이 시킨 일은 우선적으로 훤칠하게 해내면서도 직장의 일이나 가족들의 요구는 소홀히 여겨 자기 몫을 못하거나 집안이 엉망이 될 때까지 방치하는 일도 많다.
가정이 흐트러지는 경우는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습관과 스타일의 문제지만 교회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라든지 교회 일을 잘하면 하나님이 내 가정과 아이들의 미래까지 책임져주신다는 식의 생각이 있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며 가정이 더욱 근본이고 우선이다.
요즘은 교역자들도 무척 바쁘지만 어쨌든 그것은 자기 직업이니까 매일 그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자기 직장이 따로 있는 성도들에게 교회의 중직을 두세 개씩 맡기면 어쩌라는 것인가? 교회 일만 주님의 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봉사할 때는 천사 같으면서도 가족들에게는 으르렁대는 사람도 있고, 교회만 갔다 오면 너무 피곤해서 다른 일은 다 제쳐두는 경우도 있다. 말은 봉사하지만 사실 감투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교회는 일을 줄여야 한다. 교회가 비어가고 규모가 줄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일을 추진하면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을 없애고 줄이면 교인이 줄어들까 염려하는 목회자가 많은데, 지금 교회가 텅 비는 이유는 프로그램이 부실해서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강단이 부실하고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며 교회에서 참된 사랑과 위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모이게 하고, 각종 프로그램과 온갖 조직으로 교인들을 뺑뺑 돌려야 뭔가 돌아가는 것일까? 사람은 창조의 원리에 따라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하는 거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주일은 안식일이 아닌데도 안식일과 혼동하게 만들면서, 그 하루를 교제와 나눔도 아닌 회의와 행사 진행과 연습 등으로 보내게 한다.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교인들은 자기가 아니면 안 되고, 그만두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나 아니면 안 돌아가는데 내가 정 시간과 역량이 안 되면 그 일은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다 돌아간다. 어떤 때는 더 나아지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는 교회 봉사는 내가 전문성을 지닌 일 딱 한 가지만 하고, 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부터 시간과 능력이 닿는 만큼 한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 중요한 것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개인 취미가 아닌 내가 시간을 써서 하는 이른바 사역으로 여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어떤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어떤 일은 아니라는 구분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교회에서 무슨 직책을 맡아야 봉사라고 여길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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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설교하기도 한다.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성경이 틀렸다. 개역성경을 검색해 보면 충성이라는 단어가 여러 개 나온다. 신약성경에 주로 성도의 지침들이 나오므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충성은 대개 신약성경에 나오는데, 개역성경에 20회 이상 나오고 개역개정에서는 17회로 줄어든 '충성'이 이상하게도 킹제임스 흠정역에는 딱 한 번밖에 안 나온다.
개역성경은 faith, 즉 '믿음'을 어떤 경우에 '충성'으로 번역했고, faithful도 '충성'으로 여러 번 번역했다. 흠정역은 faith를 '믿음'으로, faithful을 '신실한'으로 옮겼다. 당연히 그런 의미이다. 딱 한 번 있는 '충성'은 fidelity를 옮긴 것이다.
충성에 관한 유명한 말씀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개역)
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 (1Co 4:2, NIV)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고전 4:2, 흠정역)
Moreover it is required in stewards, that a man be found faithful. (고전 4:2, KJB)
신실함은 반드시 어떤 일을 안 해도 드러날 수 있는 덕목이지만 충성이라고 하면 뭔가 겉으로 일을 해서 보여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다.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과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무조건적 순종의 의미까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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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봉사...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성도에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악용해 편하게만 살려 하면 안 되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해야 한다. 이제 헌신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그저 출석만 하는 성도는 일손을 보태고,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해소된다. 일하지 않는 성도들의 참여가 어쩌면 더 시급한 문제이다.
교회는 많은 일로 교세를 확장하고 과시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일의 양을 보시는 분이 아니다. 주일은 쉬는 날로 정하고, 일부는 돌아가면서 봉사하되 나머지는 교제와 나눔을 가질 수 있는 재충전의 날로 삼아야 한다. 이 모두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머리에 박힌 어떤 개념을 좀 털어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위험한 것은 끊임없는 봉사에 중독되어 '일을 위한 일'을 하게 되는 현상으로 주일이 쉬는 날이 아니라 일하는 날이고, 일요일이 '일(事)요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무언가 상급과 땅에서의 축복을 기대하고 자신은 뭔가 해 놓았다고 여기는 거다.
그런데 교회 일을 줄줄 꿰는 전문가들 중에도 복음의 원리는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중직자들도 적지 않다. 부디 너무 바빠서 진리를 알 시간이 없거나, 심지어 구원받을 시간조차 없는 교인이 없기를,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줄도 모르고 뿌듯해하는 교회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