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헌금을 어떻게 드리고 있나?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만고불변의 법칙이 진리다. 진리 되신 주님이 성전에서 헌금하는 것을 지켜 보고 계셨다.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지 하나님의 온 관심은 우리의 중심을 살펴보신다. 부자들의 한끼 외식비에도 못 미칠 두 렙돈은 과부가 가진 전부를 드린 것이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으며 사랑하면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하나님 앞에 드릴 때에 인색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부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긴다는 것이다. 내일 어떻게 될지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 한다는 신앙의 고백이 그 속에 담겨 있다. 헌금을 드리는 것보다 헌금 드릴 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 중에 아깝지 않을 만큼만 드렸으나 과부는 전부를 드린 것이다. 드린다는 것은 신앙 고백이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마6:21)고 말씀하셨다. 헌금 생활과 믿음은 반드시 관계가 있다.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 지갑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기는 어렵다고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내 지갑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재물은 누가 주셨나?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셨다.(신8:18) 상황이 바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먹다 남은 빵조각을 드리듯 하나님께 쓰고 남은 찌꺼기를 드리지 않았는가?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따로 구별하여 드리는 자세가 중요하다. 주머니에서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아무거나 일부를 드리는 것은 찌꺼기를 드리는 것과 같다. 수많은 기도를 하지만 헌금을 위해서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헌금해야 될지를 기도해야 한다. 헌금 속에 어떤 희생과 노력과 감사가 있는가? 창골산에서 전혀 모르는 미자립교회를 위하여 하루에 100원의 헌금을 드리는 일백운동의 후원자들이 하는 일은 쉬운 것 같으나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까짓 100원쯤이야 하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수년 동안 이 사역을 하면서 깨달았다. 100원을 우습게 여기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단돈 1원도 못드리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다(삼상16:9) 우리의 지갑이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한 우리의 헌금 정신은 탈선한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기를 바라고 하는 헌금은 중심이 비뚤어진 것이다.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진리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하신 말씀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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