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나와의 관계
성도는 말씀을 귀히 여긴다.
말씀을 보배로 여기며 생명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론 아니고 실제의 삶에서도
그렇게 적용하며 산다고 말 할수 있는가?
말씀이 금보다 소중하다고 생각도 하고 말도 하지만
그만큼 소중히 여기지 못하며 사는 것 또한 부인 할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물질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고
세상의 명예와 권세 때문에 말씀을 배반 하며 살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씀 때문에 얼마나 포기하며 살고 있었는지
나 자신부터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제나 내가 먼저였고 말씀은 그 다음이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믿음 있는척 나를 합리화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말씀을 이용하며 살아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말씀이 나의 전부라면 가지고 있는 전 재산과 권세와 명예를
지금 바꿀 수 있는 믿음이 과연 내게 있는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 하고 말씀을 따라
아브라함 처럼 지금 당장 집을 나설수 있는가?
나는 말씀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 뿐이요
늘 말씀에 배반자로 살아 왔다.
말씀,!말씀!
말로는 말씀을 외쳐대지만 정작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
내게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가룟유다와 베드로 모두는 주님을 배반 하였으나
한 사람은 용서함 받지 못했고 한 사람은 사랑 받는 제자가 되었다.
회개가 그들을 그렇게 갈라 놓은 것이다.
말씀 앞에 산다는 것은 늘 자신을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추어
자신의 잘못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말씀에 능력을 믿어야 한다.
내 능력과 노력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말씀은 능히 나를 변화 시킬수 있다.
내 심령을 용광로처럼 녹이며
내 심령 골수를 쪼개어 모든것을 새롭게하는 능력이 말씀 안에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이 말씀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세상을 창조하신 지존자시다.
말씀을 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말씀보다 나의 것을 더 귀히 여기면
그것이 우상이다.
내가 그렇게 우상을 섬기며 살아왔다.
나는 말씀 앞에 모든것을 포기 할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나는 크리스챤이라 이야기한다면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을 속이랴!
하나님은 이미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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