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본성 가운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그 분은 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슬픔이 깊은수록 더 큰 위로를 주시며,
빈자리가 클수록 더 크게 채우시며,
하나님에 대한 필요가 더 절실할 수록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나 그 분에 대한 우리의 필요는 늘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는 보다 큰 은혜를 필요로 한다.
그럴 때,
보다 큰 은혜와 능력이 필요할 때,
하나님은 그 필요만큼 내게로 다가오신다.
< 이블린 크리스텐슨의 "잃을 때와 얻을 때" 중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95세 이상 노인들에게
질문을 던진 내용중 '만약 다시 태어나 인생을 산다면,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고 싶으냐'고
했더니 가장 많이 나온 대답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
더 많이 순간을 즐기고 기뻐하며,
해가 뜨는 것과 지는 것을 더 깊이 음미할 것이다.
2. 과감하게 기회를 향해 도전해보고 싶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흘려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3. 내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줄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후세에게 유익한 유산을 남기고 싶다.
존고든의 - 에너지 버스 - 중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
왜 사람들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평안을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참 평안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모른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다.
사탄은 현대를 사는 우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편안'이라는 무기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편안'을 '평안'으로 혼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편안은 게으름을 습관화할 뿐 편안을 주지 못한다. 때로 인간의 육신은 사탄의 환상적인 파트너가 된다. 편안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장애가 많다.
인간은 편안할 때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풍과 긴장 속에서 안식의 능력이 영근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편안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이다. 거친 파도 속에서 위대한 항해사가 탄생한다.
하루살이처럼 살기 원한다면 굳이 어려운 환경을 견딜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독수리가 되고 싶다면, 넓고 높은 창공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고난의 환경 속에서 다듬어져야 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자료ⓒ창골산 봉서방
|
'하늘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에는 목적(촛점)이 명확해야 한다 (0) | 2017.05.23 |
---|---|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승리한다 (0) | 2017.05.21 |
당신은 무너져 보셨습니까? (0) | 2017.05.12 |
세상 사람들이 놀라는 성령 충만 (0) | 2017.05.08 |
사도요한의 요한계시록 영화 (0) | 2017.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