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양식

예수를 아는 것

yigdal(米糠) 2019. 3. 2. 09:37

예수를 아는 것 (1)


예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종교의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예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데 있다.
예수를 그저 능력, 축복, 내세를 보장해 주는 존재로만 알고 있다.


사랑과 봉사도 마찬가지다.
좋은 것을 본받아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듯이,
참 사람 예수를 알지 못하면
다 자기 욕심을 채울 뿐이다.


예수를 아는 것 (2)


정원 목사님의 글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래요. ^^

1.

모든 사람의 소원은 의식하든 안하든
예수를 아는 것이다.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사랑하고 싶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
이러한 마음들은 모두 신성에 대한 추구, 주님을 향한 추구이다..
그러나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진, 선, 미 의 열매만 추구할 뿐
하나님을, 본질을 알지는 못한다.

2.

하나님은 사람을 빈 그릇으로 만드셨다.
위장이 비었을 때 우리는 배고픔을 금새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육적인 공허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슴의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영적인 공허.. 영적인 배고픔이라고 할 수 있다.

3.

충만..
무엇이 진정한 충만인가?
떡이 위장을 채우듯이
말씀은 심령을 채운다.
마귀는 본질이 아닌 것에 몰두하게 한다.
제자훈련, 은사, 권능 모두 본질이 아니다. 육체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내적인 주님의 충만..
이것이 심령의 양식이다.
임재하시는.. 현존하시는 충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4.

예수의 보혈을 마심..
예수의 호흡을 마심..

이렇게 마심으로써 충만해지지 않으면
죄를 짓고 넘어지게 되며
사역을 할 수 없게 된다.

충만하지 않고 부족해지면 죄를 짓게 된다.
사람은 악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지 않아서..
결핍되어서 죄를 짓는다.
충만치 않은 것이 모든 것의 문제이다.

5.

주님을 기다리라.
주님은 바로 우리 옆에 계신다.

영의 눈이 열려 이것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엘리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그의 영감이 갑절이나 임하기를 간구했다.

6.

주님을 추구한다고 난리치지만
주님을 향한 추구가 아니라
자기 사랑일 수 있다.
주님에 대해 강렬한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자신을 기만할 수도 있다.
자기기만..
이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자기의 거짓말에 스스로 세뇌되고 그것을 믿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이 비췰수록..
이 때까지의 나의 추구가 명예욕 이었음을 알게된다.

7.

주님을 열망하는 분량은 다 다르다.
마귀는 본질이 아닌것을 추구하게 한다.
어떤 신앙적인 형식을 추구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된 추구는 자기의 의만을 쌓게 할 뿐이다.

8.

우주의 가장 큰 비밀은
"예수가 하나님"
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의 중심은 예수이다.
마귀가 하는 오직 한 가지 일은 예수를 잃게 하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에.. 혹은 증오에 어떤 것에든 빠지게 하여
영혼을 주님께로 멀어지게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이다.

9.

우리의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정 반대이다.
우리는
고통, 가난, 한계를 싫어하며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실은 그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능력으로 채워지길 원한다.
무기를 얻기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힘의 원리이며 세상의 방법이지
주님의 방법이 아니다.

주님의 원리는 은혜의 원리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는 것이
주님의 방법이다.

사람들은
무기력과 연약함을 받으시는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잘 모른다.

힘이 있는 곳엔 은혜가 오지 않는다.
이것이 영성의 원리이다.
주님의 원리는 우리의 타고난 본능과는 완전 반대이기 때문에
본능을 따라가면 본질에 닿지 못한다.

주님의 원리와
경제성, 세상 원리, 힘의 논리와는 반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제시하시는 길을 따라 가야만
본질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10.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분은 주님이시다.
신앙에 대해 많이 알고
영적인 것을 우상으로 삼는 사람일수록
주님을 괴롭히고 못박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할 때
'아멘'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은 결국 고독하시다..


11.

주님을 보는 것은 거룩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의 영광 앞에 압도되는 것이다.
은혜의 차원에서는 포근함, 친밀함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깊은 임재는 아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는 상상들은
유아적 차원이며 우리의 혼이 많이 들어가는 차원이다.
점차로 갈수록 상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보여지게 된다.

12.

주님께 받은 메세지를 전할 땐
자신과 듣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게 마련이다.
성령의 역사는 항상 새롭기 때문에 패턴화 하면 안된다.
주님의 역사를 흉내내고 제한하면 안된다.
남이 이렇게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주님이 제한을 받으신다.
억지로 웃을 필요 없다.
억지로 울 필요 없다.
주님의 역사는 항상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억지로 하는 것, 재미없고 따분한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뭔가 부담이 있고 억지로 하고
힘들고 짜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면 그건 육으로 하는 것이다.

13.

주님 아닌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가 있으면 주님만 보는 데 한계가 있다.
주님 아닌 다른 것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영적 간음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오직 사랑하고 주는 관계가 되어야지
소유의 관계가 되면 안된다.
그저 있는 것을 축복하며..
떠나더라도 감사하는 것이
사람과 맺어야 할 관계이다.
소유하려 하면 반드시 귀신이 따라온다.

섬기기 위해, 나를 내어주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지
배우자를 통해 만족을 얻으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아니구나..
배우자도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구나..
하는 고독을 경험하지 못하면
주님께로 나갈 수 없다.

명예, 사랑, 모든 것이 허무함을 경험해야 한다.


14.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주님은 "너 자신을 자책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자책하지 말아라.. 내가 그걸 원치 않는다.
너는 부족할 뿐이다. 나의 풍족한 은혜를 더 받아라."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부어주시는 것이다.
모든 죄의 상태는 굶주림과 부족에서 오는 것이므로
주님께서는
"내가 더 주겠다. 더 많이. 내게 와서 받아라."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원하는 최상의 것보다
주님은 더 많이 주시기를 원하신다.
"주님 제가 왔어요. 저는 당신이 필요해요.."
이러한 기다림..
이것이 수 많은 헌신과 노력보다 주님을 더욱 기쁘게 한다.
"내 소원은 나를 주는 것이다.
네가 먹고 배부르면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부족한 것,
내가 못된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말라.
오직 주님의 충만을 받으라..
받으라.



...




'하늘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 만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다니?  (0) 2019.03.05
강한 나라 이룰 성도  (0) 2019.03.02
군중 심리  (0) 2019.02.28
인생의 역전드라마  (0) 2019.02.28
군중 속에서 기도 굴로  (0) 2019.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