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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의
< 일본 内村鑑三 1861.3.26 - 1930.3.28.>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 당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믿어보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버림받은 심령이다.
둘째,
성경을 읽어도, 요절을 외워도,
성경은 많이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 지식적인 책이 아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된다.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와야 한다.
이것이 안 들리는 사람이 저주받은 사람이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원망과 불평 뿐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노라.” -빌립보서 1:4
생각할 때마다 원망하고 분하고
한이 맺히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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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크리스천투데이 객원 칼럼니스트 패트릭 마빌로그 목사는 최근 ‘현재 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려주는 5가지 신호’라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했다.
마빌로그 목사는 칼럼에서 “우리는 직업, 소명, 사역, 관계성 등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매우 신실하게 움직이지만, 결국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있다”면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잠언 19장 21절은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말씀하고 계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가 잘못된 길 위에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고 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라면서 다음 5가지 신호를 소개했다.
1. 끊임없는 좌절
우리가 길을 가는 동안 좌절을 경험할 수 있고, 방해물, 도랑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도랑을 너무 많이 만난다면, 더 이상 이는 길이 아니며, 우리가 계속해서 좌절할 수 있다. 계속된 좌절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며,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이다.
2. 잦은 탈진
좌절이 조금씩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너무 잦은 좌절은 우리가 잘못된 길에 있다는 신호이다. 탈진도 마찬가지다. 때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다(마11:28). 그분은 여러분을 자리에 앉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주고 싶어하신다.
3. 닫혀진 문들
‘하나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다른 쪽 문을 여신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모든 문이 닫힌 것처럼 보일 때는 어떠한가? 이민, 직업, 관계성 등이 모두 닫힌 것 같을 때, 이는 우리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4. 그리스도와 관계성이 희미해짐
모든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예수님께 대한 의존성과 관계성이 더욱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그런데 만약 부르심이 그분과의 친밀함에서 계속 멀어지게 한다면, 우리가 잘못된 길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5.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미미
우리의 부르심은 반드시 자신에게 복이 될 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도 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도 유익하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최고의 길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의 길은 항상 우리와 관계를 맺는 많은 이들의 선을 위해 합력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고질병'에 점하나를 찍으면 "고칠병"이되니,
점 하나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마음 '심'(心)자에 신념의 막대기를 꽂으면
반드시의 "필"(必)자가 됩니다.
불가능이라는 뜻의 Impossible 이라는 단어에
점하나를 찍으면, 가능하다는 I'm possible이 됩니다.
'빚' 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으면 밝은 의미의
'빛' 이 됩니다.
Dream is nowhere. 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 가
띄어쓰기 하나로 Dream is now here.
꿈은 바로 여기에 있다로 바뀝니다.
유행가 가사에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 붙이면 남이 되고
남이라는 글자에 다시 점하나를 빼면 도로 님이 됩니다.
요즘도 여성 중에는 점의 위력을 알기에
거금을 들여 얼굴에 미인 점하나를 콕 찍는다 하지요.
잘되면 미녀, 못되면 추녀 됩니다.
독일의 '라인강 기적'과 전쟁의 폐허로부터 이룬
'한강의 기적'은 바로 고질병에서 고칠 병으로 점하나 찍은
노력의 소산입니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성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행동이나 죄악된 행실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받게 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징계를 받을 지는 당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는 세상 사람들을 들어서 사용하실 수도 있고 아니면 주 안에서 형제가 된 성도를 들어서 도구로 사용 하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한 가족일 경우도 있으며, 그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가장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징계를 받는 사람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 한다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징계의 도구로 사용된 사람은 자중하고 조심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비록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가 잘되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만드시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도구로 사용된 사람이 그가 받는 징계를 즐거워하며 그를 핍박하고 조롱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조롱하고 핍박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보다 더 큰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모든 예언서가 다 그러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징계의 도구로 사용 되었던 열방들이 하나님의 철저한 징계를 받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은 후에 겸손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한 모든 것들로 인해 가슴 아파하며 그들에게 강포를 행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도 대적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실 때 그 징계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쓰임 받은 것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고 신앙의 시험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징계의 도구로 사용 되었다 하더라도 그 징계 받는 사람을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하영찬목사/자료ⓒ창골산 봉서방
1. 남의 이름을 익히는 데 숙달되도록 한다.
흔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 되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일단 그 사람의 이름을 익히는 데 신경써라.
2. 나와 함께 있다는 것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온화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즉, 오래 사용해서 익숙하고 편안해진 헌 모자나 헌 신발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
3.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갖는다.
상대방이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도 우쭐해하지 말고 내가 무엇이든지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일은 피하도록 한다.
4. 어떠한 일에도 흥분하지 않는다.
깜짝 놀랄 일을 당하더라도 차분한 자세를 견지한다.
5. 사람들이 나와의 교제를 통해서 무엇이든 가치있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폭넓은 인격을
갖추도록 노력한다.
6. 자신의 성격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성격은 제거한다.
설사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7. 타인에 대한 모든 오해를 없애도록 노력한다.
8. 진정으로 타인들을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남이 나를 좋아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애정을 표현한다.
9. 성공한 사람에게 축하의 말을, 슬픔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10. 약한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도록 한다.
- 루스벨트(미국 대통령)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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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드러낼수록..거짓은 깊어만 갑니다..
내가 입을 열수록..오해는 더욱 더 깊어져 갑니다..
침묵하면 할수록..죄를 방기해버리는 파렴치만 늡니다..
아버지..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아버지..
제가 돌맞을 여인보다 더욱 악한데..
그런대..제안의 외식과 거짓은..
애써 입다물고.. 거짓된 오해와 편견에 동조해 버리라고 재촉합니다..
눈 감으면..하늘도 보이지만..
썩어 문드러져가는 제안의 또다른 시궁창도 보입니다..
아버지..
저는 어찌해야 하는지요..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진 지식과..
제가 받는 영감과..
제 안의 거짓은 교묘히 섞여 들어가..
또다른 저를 왜곡 시켜 버립니다..
아버지..
저는 왜 이리 생겨 먹었을까요..
왜 제안에는..
천사의 모습을 한 순진함과
악마의 모습을 한 사악함이 같이 갈까요..
어찌해서..
같이 갈 수 없고.. 섞일 수 없는 것들이 섞일 수가 있냐구요..
그래서..
전 다시 입을 다뭅니다..
입을 열면 구취가 나거든요..
그런대 그 구취가 제 냄새인대..
그것을 저도 싫어하니까.. 남들앞에선 양치질 하는 것이 맞겠지요..
아버지..
모르는 것은 없어요..
행동하기 싫은 것도 사실 아니에요..
전 거룩해 지고 싶고.. 말씀안에서 걷고 싶어요..
그런대..
제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시금 오물 덩어리속으로 몸을 뉘이지요..
돼지는 씻겨두 다시 그 우리에 누우겠죠,..
알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니..
그리 살게도 해주셔야지요..
그런대도..
제가 가야 할 길은 저앞에 보이네요..
그래서 또 일어나보기는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냥 ..
오늘도 실수 투성이로..
오늘도 거짓 투성이로..
또 그렇게 걸어 볼게요..
저를 도와 주세요..
아버지...../자료ⓒ창골산 봉서방
박영민
침묵은 자기관리에 시작이요.
힘들고 어려우면 불평하지 말고,
그동안 삶을 돌아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침묵은 영성관리에 시작이다.
자신을 성찰하며 분별하여
가야할 진리의 길을 선택하기에 유익하다.
침묵은 생각 속에서 금을 깨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깨달음과 상상력을 얻기 때문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성령님에 의해 통제받는 사람과
육신적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엡 5:18-20).
육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억지로
기쁨과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및 절제가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감정에 의존할 때 문제가 생긴다.
의인(義人)은 감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
감정은 때로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큰 비극들 중의 하나는
객관적인 것보다는 주관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기보다는
감정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신령하다고
느끼지 못할 경우, 자기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의 삶 속에 죄가 있다면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판단에 동의할 때 우리는 몇 가지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성령님을 슬프게 하거나 그분의 감동의 불을 끄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없이 자기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태도, 은근히 교만한 것,
속이는 것도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죄이다.
둘째, 예수님이 내 죄에 대한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하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회개해야 한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나의 행위를 버리고,
그분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님이 나의 삶을 주장하실 때 나의 사고방식, 말, 태도, 욕구 및
행동이 그리스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게 된다.
- 빌 브라이트, 기독교 교양/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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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과 동행할 준비가 된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기독교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원하는 것은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불하는 보험료는 주일에 불편하지만
그래도 참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헌금을 드리고 저질스러운 쾌락을 삼갑니다.
그들은 보험이 실효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작은 불편들을 감수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목적이 아니라
사교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를 자기들 편할대로 해석합니다.
성경에 나온 엄하고 두려운 말씀들은 그들의 손에 의해 제거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이 말씀하려고 하는 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무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변명에 여지가 없을 정도로 '뒤틀어진' 우리의 심령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영원이 사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성경에서의 '아는 것'은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죽음은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물건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영생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 분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분 밖에서 모든 것을 찾겠지만,
우리는 그 분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시편 119편의 기자와 같이
온 정신을 그분에게 쏟으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찾으시는가요?
예수님이 진정 당신의 주인이신가요?
그 분이 우리의 모든 것이어야 합니다.
- A W 토져, "세상과 충돌하라"중에서/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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