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기도

40장 기도 응답의 은혜(왕상17:8-16)

yigdal(米糠) 2018. 8. 1. 15:44

40장 기도 응답의 은혜(왕상17:8-16)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시돈의 사르밧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의 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돌보아 주라고 명령했다고 하십니다(왕상17:9).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가서 그 여인을 만났는데, 아들과 먹을 양식조차 넉넉지 않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먹을 양식도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달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했고 하나님은 그 집을 보호하셔서 그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이루어였습니다. 기도 응답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첫째, 기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기도는 생각과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인데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고 말씀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둘째,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하지만 응답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응답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33:3). 기도 응답은 크고 놀라운 일이며,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11:24). 겨자씨만 한 믿음도 태산을 옮기는 능력이 됩니다(17:20).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크고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도 응답은 은혜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왕상17:9).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르밧은 시돈 지방에 속한 마을로 아합 왕의 왕비인 이세벨의 고향입니다. 이세벨의 아버지는 시돈의 왕으로 바알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을 통해 이스라엘에 바알이 들어왔고 엘리야는 그 바알과 맞서 싸우다가 몸을 피하여 다니는 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그 사르밧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절대 가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기 때문에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은혜는 기도의 자리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여인을 만난 것이 은혜입니다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왕상17:10).

엘리야가 사르밧에서 과부를 만난 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엘리야는 과부를 만날 수 없습니다.

첫째, 엘리야는 과부를 우연히 만납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의 성문 안으로 들어설 때에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습니다. “나뭇 가지를 줍는 지라”(왕상17:10). 전혀 계획된 만남이 아닙니다. 우연한 만남입니다. 그 만남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둘째, 엘리야는 과부를 모르고 만납니다. 성경에 한 과부가”(왕상17:10)라고 나옵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이 과부인 줄을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모르고 만났지만 그 여인이 과부였습니다. 엘리야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셋째, 다른 목적으로 만났습니다.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왕상17:10). 엘리야는 그 여인이 자신을 앞으로 돌보아 줄 사람인 줄 모르고 다만 물 한 모금 얻어 마시겠다고 불렀습니다. 엘리야가 생각한 바가 달랐음에도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응답을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게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17:15-16).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르밧의 과부를 만났고, 그 집의 통의 가루가 마르지 않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스니다. 엘리야가 응답을 받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전적인 은혜입니다.

첫째, 엘리야는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했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그녀의 양식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건네기 쉬운 말이 아닙니다. 선지자로서 그 백성이 먹고 죽기로 작정한 양식을 달라고 하다니, 인간적으로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대로 과부에게 요청했습니다. 기도는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은 권리입니다.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열두 해동안 혈루증으로 고새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치유되었습니다. 왜 그녀는 치유를 부탁하지 않고 몰래 옷자락을 만졌습니까? 자신이 피를 흘리는 부정한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주님 앞에 나올 수 없어서 당당히 간구하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전적인 은혜로 치유해 주십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마 기도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간구하면 주님은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 받을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어 응답하셔서 과부는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는 복을 받았습니다. 기도 응답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기도 응답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를 하지만 응답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은혜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은 사람의 능력과 방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한량없이 베푸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어 측량할 길 없는 사랑과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주님의 은혜만이 기도 응답의 근거입니다.

 

(오늘의 기도)

기도자로 살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었고, 그 보혈의 피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었음을 고백합니다. 구원하신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의 큰 고통이 사라지고, 눈이 밝아 참된 진리에 눈뜨게 하소서, 영혼을 정결케 하소서, 주님의 은혜 아래 평안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